2009년 3월 22일 일요일

파워블로거가 파워를 가졌다는 착각

대중의 Attention을 획득해 유명연예인이 되면 파워와 부를 가졌다고 착각하는 연예인이 적지 않은 것처럼, 대중의 관심을 얻는 파워블로거가 되면 Power와 부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블로거도 적지 않다. 착각이다. 대통령과 재벌총수가 오라가라 손가락질 하면 불려나갔다가 비밀엄수 서약에 재갈을 물고 벙어리처럼 사는 연예인에게 무슨 파워가 있는가? 기업이 돈 준다면 비밀엄수 서약에 도장 찍고 글을 쓰는 블로거에게 무슨 파워가 있는가?

관심을 획득했다는 것은 이를 바탕으로 돈을 벌 기회가 생겼다는 것 이상이 아니다. 물론 관심에서 멀어지는 순간 돈 벌 기회도 사라진다. 유명연예인의 파워? 그들이 기업을 죽이고 살리나? 우리의 일상을 바꾸거나 여론을 바꾸나? 그저 돈을 주면 광고 종류 가리지 않고 출연하는 부류일 뿐이다. 물론 그들도 파워는 있다. 자기네 스피어에서 후배들을 자기 앞에 줄세우는 파워를 보여준다. 뭐 그것도 유명했을 때 잠시 행사하는 파워지만.

파워블로거도 자신의 유명세를 바탕으로 돈 앞에 줄 서서 자신에게 돈 받을 기회가 들어오기를 바라는 부류에 불과하다. 그들이 기업을 고르고 돈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그들을 고르고 돈을 준다. 물론 그들도 파워는 있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니편 내편을 줄세우는 파워는 있다.



5년 전 톱스타 연예인? 누군지 기억도 안 난다. 관심에서 멀어지는 순간 잊혀지고, 돈 벌 기회도 사라졌다. 파워는 누구에게 있는가? 돈을 쥐고 있는 기업과 광고주, 그들에게 큰소리 치는 정치권, 노출권을 쥐고 있는 PD에게 있다. 그들은 50년 전에도, 5년 전에도, 지금도 여전히 파워를 휘두르며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일부 기업과 개인을 파탄으로 내몬다. 기업과 광고주, PD, 국장은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연예인 중에서 마음에 드는 인간을 선택하는 권력을 지금도 휘두르고 있다.

여기서 퀴즈다. 간택을 기다리는 파워블로거에게 파워가 있을까? 마음에 드는 블로거를 골라 돈을 던져주는 대기업에게 파워가 있을까?

2009년 3월 19일 목요일

파워블로거와 연예인의 공통점

파워블로거는 연예인과 닮은 점이 많다. 두 부류 모두 대중이 지닌 'Attention'이라는 자원을 획득함으로써 'Power'를 가지게 되고 경제의 기초를 마련한다. 연예인이 춤, 노래, 끼, 미모 등 특출한 하나로 주목받는 것처럼 파워블로거도 요리솜씨 또는 사진, 글, 사교술 무엇이든 특출한 하나를 지니고 있다. 특출하다는 것은 정보 홍수 시대에 주목받고 노출될 수 있는 경쟁력이다.

Thomas H. Davenport가 'The Attention Economy'에서 말했던 것처럼 관심경제 (Attention Economy)는 유인원 시절부터 존재했던 본능일지 모른다. 아니 짝짓기에 목숨을 건 동물들의 구애행위나 아름다움과 향으로 새와 벌을 유혹하는 꽃들을 본다면 관심경제는 모든 생물의 원초적인 생존을 위한 경제일 것이다.

날마다 수 많은 신인들이 브라운관을 메우고, 신인이 새로 등장하는만큼 이전에 관심 받았던 누군가는 슬며시 노출에서 사라진다. 채널은 한정되었고 연예인은 많다. 그렇게 이전의 연예인은 관심에서 멀어지면서 잊혀진다.

인간의 정보량 한계는 신인 블로거의 글을 읽는 동안 이전 블로거를 노출에서 밀어내고 지워버린다. 5년 전은 고사하고 1년 전 파워블로거 중에서 몇이나 살아남고 기억되고 있을까?



연예인과 파워블로거는 잊혀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적지 않은 노력으로 스타가 되고 파워블로거가 되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순간 권력과 부를 손에 쥔 것 같은 착각을 하지만 가벼운 대중은 좀더 참신해보이는 신인에게로 다시 관심을 이동시킨다. '꽃보다 남자'의 F4가 의미하는 바는 F4의 노출만큼 이전의 꽃미남 4명은 잊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발버둥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한정된 채널에서 늘 주목받는 스타나 블로거가 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잊혀지지 않기 위해 자신을 팔 각오를 하거나 발버둥을 치는 모습은 연예인과 블로거나 다를 바 없다.

2009년 3월 17일 화요일

미군의 'sexual assault' 증가. 예방책은 전쟁중지

해외 주둔하고 있는 미군의 'sexual assault'가 전년도보다 8%증가했다.

필립 짐바도르 교수가 보여주었던 죄수와 교도관 실험 장면은 이라크전에서 그대로 재현되었다. 간수 역할을 하던 피실험자가 죄수의 옷을 벗기고 봉지를 씌우고 깔고 뭉개며 치욕을 주던 장면은 이라크전에서 그대로 재현되었다.



짐바도르는 35년 뒤 '루시퍼 이펙트'를 통해 '썩은 상자 제조자'라는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썩은 상자' 속에 들어갈 경우 선량한 사람도 돌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100%의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고도의 수련으로 절대의지를 가진 1% 정도를 제외한 99%의 사람은 시스템에 의해 변질된다.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에서 실험자가 450v의 전기충격을 준 이유도 시스템이었다. 2004년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수용소 학대사건을 다룬 'Standard Operating Procedure' 프로그램을 보면 사건에 참가했던 미군은 "모든 것이 Standard Operating Procedure 였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결국 미국정부가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성폭력이 줄지 않을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140만 명의 해외 주둔 미군을 철수키시키는 것이다. 모든 철수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간수복과 흰가운을 입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이라크전 등의 실제 전선에서는 철수해야 한다.

2009년 3월 16일 월요일

Americans top economic concern


월요일(3.16) 아침에 CNN과 Opinion Research Corp.의 서베이에 따르면 가장 중요한 경제 이슈는 일자리다. 응답자의 36%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경제적 이슈는 일자리를 잃을까 두려운 것이라고 답했다. 2007년 12월 이후 440만 개의 일자리가 날아갔다. LA, California 등에서는 1만 명이 구직란을 채우느라 줄을 잇고, 치솟는 물가에 희망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63%가 경제가 자신들의 최대 근심사라고 말했다. 만약 자신이 일시적으로 해고된다면 다시 좋은 직장을 구할 자신감이 없다고 답한 사람이 51%나 되었다. 1년 전보다 10% 증가한 수치로 일시 해고가 영구 해고 내지는 더 낮은 수준의 직업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불안감을 드러낸다. 그렇게 미국 경제는 사람들의 자신감을 가라앉히고 있다.

The Attention economy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들

The Attention economy라는 이론이 각광받기 전부터 The Attention economy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들이 몇 부류 있다. 연예인이 그 중 첫 번째다. 좋은 이미지가 아닌 악역이라도 좋으니 주목받지 못 하면 끝이다. 매일 새로운 신인들이 개그 프로를 채우고, 음악프로와 버라이어티를 채우는만큼 기존의 인력은 방송에서 사라진다. Channel은 좁고, 공급은 많아 일년이면 신인 개그맨과 가구, 탤런트가 화면을 메운다.
노출되기 위해 주목받기 위해니 무슨 짓이라도 할 부류다. 스캔들 만들기 성상납 정도가 아니라 자해를 하고, 사고를 쳐서라도 한 줌의 주목을 위해 인생을 건다.
The Attention economy를 이해하는 또 다른 부류인 쇼핑몰 점주들이다. keyword광고의 어텐션에 눈이 벌개지거나 abusin에 혼신의 힘을 아끼지 않으나, 자해하거나 몸을 바칠 정도는 아니니 연예인에 비하면 시스템 이해도는 높으나 체감도가 떨어진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2009년 3월 14일 토요일

책임감 없는 권력 괴물 한국언론과 The Second God 'Media'

Tony Schwartz는 'Media, The Second God'에서 "미디어는 제 2의 신이 되었다"라고 말했다. 현대 미디어가 정치, 경제, 종교, 사회, 개인생활에 끼치는 영향력을 다각적으로 분석한 뒤 내린 결론이다.

'제2의 신'에 대해 Alvin Toffler는 'War and Antiwar'에서 미디어의 신적 권능에 대해 "미디어는 누구도 통제불가능한 절대권력이 되었으나 이 괴물은 선거를 통해 선출된 권력도 아니다. 그러다보니 이 괴물은 수익만 중요시여기고 추구할 뿐 책임감이 없다. 책임감 없는 절대권력, 이것이 바로 현대 미디어의 실체다."고 정의했다.

모든 미디어가 '책임감 없는 절대권력'은 아니지만 적어도 한국언론은 앨빈 토플러의 정의에 딱 들어맞는 괴물임이 분명하다.